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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고있네

아빠의 앨범 속 쿠폰..

by 디노우하리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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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앨범 속 쿠폰..

예린이는 한창 예민한 고3이다. 동생 예준이와는 2살 차이. 부모님은 맞벌이라서 아침 일찍 출근하신다.
부모님이 벌써 출근하신 뒤, 예린이도 학교갈 준비를 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익숙하게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먹는다. 동생 예준이 몫도 같이 챙겨서 준다. 예린이보다 늦장을 부리며 일어난 예준이도 익숙하게 누나 예린이가 챙겨준 시리얼을 먹기 시작한다. 별로 대화는 없다.

시리얼을 먹다가 문득 식탁에 있는 탁상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8월 24일 금요일. 그런데 오늘 달력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되어있다. 엄마가 표시해두었나 보다. 무슨 날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념일인가 보다.

출처-픽사베이

무슨 기념일이지? 생일인가? 예준이는 아니고... 엄마는 지났고... 아빠 생신인가?...
생각해 보니 아빠 생신이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저녁에 작은 선물이라도 사서 드려야겠다. 안 그러면 서운해하실 테니까..

...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가는 길.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떨며 걸어간다. 그러다 문득 선물이 생각났다.

선물사야 하는데...

오늘은 학원 수업이 2개다. 아무래도 학원을 마치고 나면 시간이 늦을 거 같다. 그래서 학원 가는 길에 가까운 팬시샵에 들린다. 아껴둔 용돈으로 작은 열쇠고리 하나를 산다. 

출처-픽사베이

열쇠고리. 아빠가 좋아하실까? 같은 고민은 하지 않는다. 모르니까. 예린이는 아빠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잘 모른다. 

어릴 때에는 아빠 좋아, 아빠 놀아줘 그러면서 함께 있던 시간이 많았는데, 점점 커 갈수록 함께 있는 시간과 서로 간의 대화는 줄어만 갔다. 이번에 선물을 챙기는 것도 아빠 생신을 챙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안 챙겨줘서 서운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으니까. 그렇다고 아빠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

학원을 마치고 늦은 저녁이 되어서 집에 들어간다. 엄마와 동생은 집에 왔고, 아빠는 아직 안 오셨나 보다. 씻고, 밥 먹으려고 거실로 나오니... 벌써 9시가 다 돼 간다. 아빠는 아직도 안 오셨다. 
엄마가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니 집 앞이라고 하신다. 잠깐 기다려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다. 

아빠가 오셨다. 모두 모여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늦은 저녁이라도 부담은 없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좀 늦어도 괜찮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냉장고에서 케이크 꺼낸다. 엄마가 퇴근길에 사 오신 케이크이다.역시 아빠의 생신이 맞았다. 요령껏 미리 사둔 열쇠고리를 드린다. 아빠가 웃으며 '고마워 우리 딸'이라고 해주신다. 

열쇠고리가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생일을 챙긴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건 예린이도, 아빠도 같은가 보다.

새벽..

예린이는 방에서 학원 숙제를 마치고, 폰을 보다가 새벽 1시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서는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실로 나가서 물 좀 마시고 자야지. 하고 방을 나서는데, 부엌에 불이 켜져 있다. 

아빠가 아직 안 주무시고 식탁에 앉아계셨다. 가까이 가보니 사진 앨범을 보고 계신다. 예린이와 예준이의 어릴 적 사진들이 있는 사진 앨범이다. '아빠 갑자기 이건 왜 봐?'하고 물으니, '그냥. 지금도 이쁘지만, 이때는 참 어리고 귀여웠거든'하고 웃으신다. 예린이는 괜시리 어릴적 사진을 보니,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예린이의 모습을 보시고는 아빠는 앨범을 책장에 꽂아 넣으시고, 잘 자라며 방에 들어가신다.

출처-픽사베이

아빠가 방에 들어가고 난 뒤, 예린이는 괜스레 앨범이 꽂힌 책장을 한번 살펴본다. 책 몇 권밖에 안 꽂혀있는 책장에는 예린이와 예준이의 성장 사진 앨범이 대부분이다. 

출처-픽사베이

예린이는 손이 닿는 대로 앨범 한 권을 꺼내본다. 몇 장을 넘겨보니 유치원 사진이 나온다. 몇장 더 넘겨보니 초등학교 입학 사진도 나온다. 참 어리고, 귀엽다. 완전 꼬맹이네. 몇 년 전이지? 10년? 11년?..
사진을 넘겨보면서 나오는 동생 예준이의 사진을 보며 예린이는 예준이가 몸만 컸지, 저때나 지금이나 하는 행동은 똑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앨범 중간에 사진이 아니라 색종이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본다. 비뚤 하게 글자가 적힌 색종이다.
안마쿠폰. 설거지 쿠폰. 청소쿠폰.

출처-픽사베이

유치원 때, 초등학교 1, 2학년 때 어버이날, 생신 때 만들어 드렸던 쿠폰이다. 색종이에 비뚤비뚤한 글씨로 적어서 곱게 접어서 드렸던 예린이, 예준이의 효도 쿠폰이다. 

아빠는 예린이와 예준이도 잊고 있던 그 쿠폰을 10년이 넘도록 앨범에 갖고 계셨다. 예린이는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조심스럽게 앨범 안에 있던 효도쿠폰 중 안마쿠폰을 꺼낸다.

다음날 아침...

아침 식사를 하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 아빠. 그 뒤를 조용히 다가가는 예린이. 엄마도 딸이 무슨 장난을 치려나 싶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신다. 예린이는 아빠 뒤로 가서 말없이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기 시작한다. 아빠는 '얘가 갑자기 왜 이래?' 하시지만, 좋아하신다. 엄마도 왜 인지 궁금해하신다.
예린이는 아빠가 이런 어설픈 안마에도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괜히 열쇠고리 같은 걸 샀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5분이 넘도록 어깨와 등 목을 주물러 드리고선, 가만히 손을 뗐다. 그리고선 조용히 안마쿠폰을 아빠 앞에 꺼냈다. 

아빠와 예린이, 엄마가 함께 웃었다.
예준이는 늦잠 자느라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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